강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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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역사

태고 때부터 “아리수(漢江)”의 수원은 천리길 태백산맥 준령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오백리길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대하를 이루어 고덕산과 아차산 협곡을 거쳐 이곳 광나루에서 대자연을 펼쳐 놓으니, 인가생활에 필요한 모든 여건을 갖춘 천혜의 요충지인 강동은 일찍이 6,000년 전에 선사문화의 꽃을 피웠고, 또한 고조선시대 한반도에 회안국을 세운 선조들이 남하하여 이곳에 풍 납토성을 축조, 성곽북쪽 강동지역을 전략촌으로 하여 나라를 세우니 바로 백제의 350여 년간 하남 위례성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그 후 삼국시대에는 비옥한 한강유역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였는데 고구려 장수왕 63년(475년)에 이곳을 60여 년간 점령하였고, 백제 성왕 29년(551년)에 빼앗긴 옛 도읍지를 회복하였으나, 2년 후 신라의 지배에 들어가 진흥왕 18년(557년) 이곳을 행정지역에 편입 북한산 주를 설치하고, 삼국통일을 위한 북방진출 전략지역으로 중요시 하였다.

고려 성종 2년(983년)에 이곳에 공주목으로 개칭 절도사를 두어 다스렸고, 조선선조 10년(1577년)에는 광주부로 승격 남하에 대응코자 광주부사를 유촌으로 승격시켜 수어사를 겸하게 하였으며,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에 임시 수도를 정하여 주치소를 산성내로 옮기기도 하였다.

갑오개혁으로 모든 제도가 개편되면서 1895년 광주군이 되었으며, 10개리를 관할하는 구천면은 조선 성종때 이곳에 살던 명신 판중추부사 귀천 어효첨의 호를 따라 붙여졌다. (구천면 : 곡교, 고덕, 상일, 하일, 명일, 길, 둔촌, 풍납, 성내리 등 10개리 관할, 龜川 이 九川으로 변함)

1963. 1. 1 법률 제1172호로 서울시 행정구역이 대대적으로 확장됨에 따라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은 중대면, 언주면, 대왕면 일부와 함께 성동구로 편입돼 천호출장소가 5개 행정동(구천동, 선린동, 암사동, 성내동, 천호동)을 관할하다가 1975.10. 1일에 강남구로 편입된 후 마침내 1979.10. 1일에 18개 동을 관할하는 강동구가 탄생되었다. 그 후 ‘88서울올림픽 개최 직전인 1988. 1. 1일에 강동구의 일부를 송파 구로 분구하고 24.58㎢의 면적에 21개 행정동(9개 법정동)을 관할하는 지방자치구로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맑고 푸른 전원도시로 조성 된 강동은 많은 선현들이 살았던 곳으로 옛 지명 등 문화유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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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5 10:23:41